지금 차창 밖에 눈이 내린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고층건물들 사이로 이리저리 바람에 날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눈의 비행이 사뭇 길다.

점점 많아지고 굵어지는 눈송이를 치어다보며, 

저 아래로 오고가는 차들과 발걸음 빨라지는 사람들도 본다.  

눈발은 눈앞이 가리울 정도로 부산타.

이런 눈을 맞으며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해남군 화산면에 있는 

큰 기와집의 친척을 방문했었다. 할아버지의 형님의 큰 아들의 집,

뒤편으로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와 대나무숲이 울창했다.

급경사진 화산국민학교 정문에서 버스를 내리면

그곳까지는 버스가 운행되지 않았다.

너른 들녘에 내리는 눈발이 지금처럼 바람에 날리면

어디가 논이며 어데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 눈발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치지 않은 눈발, 발목을 덮이며 쌓이는 눈,

나는 드넓은 평야의 하얀 세상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작은 키를 덮는 까만 코트 하나가 전부였던 아버지가

나와 단 둘이서 그렇게 서고 가고 있었다.

그때 그 눈이 지금 내리시는가.

세월을 돌아서 돌아서 내 앞에 내리며,

지금은 가고 아니 계신 나의 아버님 잔디 위에 내리시는가.

고맙구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휘날리는 눈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