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이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의 본을 보이셨다.

그 분은 이미 죽지 않은 생명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다, 영원한 생명 그 자체였다.

나는 조직화된 교회에는 가지 않았다.

마트를 들러 집에 오는 길에 교회에서 나눠 준 부활절 선물을 봉혜가 받아 왔다. 

분홍빛 꽃망울이 구슬처럼 맺힌 화분인데 부활의 의미를 생각하며 화단에 곱게 심었다.

그렇다고 내가 무교회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만들어져 가야할 성만(誠滿)의 교회요,

언젠가 집 가까이에 지혜로 가득한 교회를 만나 다니고 싶다.

요즘 이러저러한 일들로 몸과 마음이 빼앗겨 독서를 게을리한 탓인지,

정신은 산만하고 몸과 마음이 가려웠다.

새벽에  있을 박지성의 유럽챔스리그 4강전을 기다릴 겸 일어나,

밀린 독서와 미루어 둔 글을 쓰고 있다.

방금 잠자리에 든 황이가 정돈한 책 위로,

그의 스무살 브라운 색깔의 안경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늦은 부활의 새벽, 예수의 나라 천국을 상고해 본다.

예수의 천국은 저 푸른 하늘 위에 있는 공중누각의 당호가 아니다.

천국은 공간과 지역을 가리키는 장소적 실체 개념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지배하는 아버지의 나라(reign)이다.

그래서 예수는 천국을 말했을 뿐, 천당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에게 있어서 구약의 하늘이니 하나님이니 하는 것은

2원론적 분별의 대상이었으며 부정적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의 아버지는 하늘이나 유대인의 관념 속의 하나님처럼

나로부터 객화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나로부터 객화되지 않는 일체이며,

동시에 나의 현존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예수는 하늘나라 천국을 아버지의 질서가 지배하는 어떤

상태로써 해석한다. 그것은 개별적 주체의 개벽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주체의 개벽이란 주체의 혁명이다.

그것은 요즘 중동에서 벌이고 있는 정치적 전복과도 같은 일시적 혁명이 아니라,

영원한 의식의 혁명이다.

그래서 예수는 진리의 끊임없는 추구를 도반들에게 당부하였다.

도중에서 진리의 포기가 없는 추구를.

예수의 나라는 진리의 추구와 발견, 번민과 경이, 지배와 안식,

이 세 쌍의 과정이다. 진정한 예수의 부활은 이 세쌍의 과정을 이해하고 살펴야 가능하다.

예수의 십자가는 나의 개별적 존재의 모든 것의 종착점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나의 개별적 존재의 주체적 죽음이요,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