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중서부지방에 내린 하얀눈이 산과 들을 포근히 덮은, 

설국(雪國)을 지나, 나는 지난 해처럼 지방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올라왔습니다.

인천을 출발하기 전 버스터미널에서  

늙은 어머니와 중년의 딸이 나눈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두 여인만 남은 것일까요.

유난히 추운 겨울 아침 버스대합실에서

택시비를 손에 쥐어주려는 중년의 딸과 괜찮다며 손사래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요양원의 한 어머니가

찾아온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를 바라보다 

떨어지는 눈물과,

선천성 뇌성소아마비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13살 아이의 그 맑고 고운 눈망울에서도. 

그때 나는 그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 예수는 그렇게 우리 곁에 와 있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캄캄한 밤 하늘을 향해 부르짖지 않아도

예수님은 이미 그토록 아름답고 외롭고 낮고 쓸쓸히

우리 곁에 살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