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밤이 내리면 버릇처럼 소월의 시를 읽곤 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먼지처럼 세월이 흐른 책장에서 나는 시집을 꺼내 다시 읽고 있습니다.

껍질이 껍질끼리 싸우다 춤추며 흘러가는 소란한 밤, 

1934년 9월 21일 밤에 쓴 소월의 편지가 눈에 찹니다.

그는 석달 후 24일 이생에서의 눈을 조용히 감았지요.  

- 안서(岸曙) 김억(金億) 선생님에게

몇 해 만에 선생님의 수적(手跡) 뵈오니 감개무량하옵니다.

그 후에 보내주신 책 망우초(忘憂草)는 재삼 피열(披閱) 하올 때에,

바루 함께 있어 모시던 그 옛날이 눈앞에 방불하옴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제(題) 망우초는 근심을 잊어버리란 망우초입니까?

잊어버리라는 망우초입니까? 잊자하는 망우초이옵니까?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마음 둘 데 없어 잊자하니 망우초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옵니다.

저 구성(龜城) 와서 명년이면 십 년이올시다. 십 년도 이럭저럭 짧은 세월이란 모양이외다.

산촌에 와서 십 년 있는 동안에 산천은 별로 변함이 없이 보여도,

인사는 아주 글러진 듯하옵니다.

(중략)

자고이래로 중추명월(仲秋明月)을 일컬어 왔습니다.

오늘밤 창밖에 달빛(月色), 옛소설에 어느 여자 다리(橋) 난간에 기대여 있어,

흐느껴 울며 또 죽음의 유혹에 박행한 신세를 소스라치게 울던 그 달빛, 그 월색,

월색이 백주와 지지 않게 밝사옵니다.

                                                    1934 년   9 월   21 일   밤

                                                                 문하생      김   정   식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