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떠나간 문인 이문구 선생의 유작 '문인기행'을 읽고 있습니다.

이 늦가을 늦은 밤과 이른 새벽에 읽어도 물리지 않습니다.

그의 유장한 문장과 인물 묘사는 한 폭의 산수화 같습니다. 

문인들의 위대한 삶이 속 좁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내게 회초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의 문인기행에는 나의 닮은꼴처럼 상고(강경)를 졸업하고 말단으로 은행원

생활을 했던 시인 박용래가 있습니다. 나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을 쓸쓸하고

아름답게 읊은 그의 수상작품 <저녁눈>을 기억하는 정도지만,

그의 시와 삶이 참말 눈물이 나고 그리워집니다. 

이문구 선생은 위대한 시인 박용래를 이렇게 추억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배추씨처럼 사알짝 흙에 덮여 살고 싶다"고 했던 그는,

꽃그늘과 풀그늘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능히 알면서도 셈은 남과 같지 않았으니, 

마침내 몸소 자기 곳을 찾아 오십추 남짓 되는 생애를 초야에 묻혀 다하였다.

그는 조상 적 이름의 풀꽃을 사랑하여 풀잎처럼 가벼운 옷을 입었고,

그는 그보다 술을 더 사랑하여 해거름녘의 두 줄기 눈물을 석 잔 술의 안주로 삼았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여 밥상의 푸성귀를 그날치의 꿈이 그려진 수채화로 알았고,

그는 그보다 시를 더 사랑하여 나날의 생활을 시편의 행간에 마련해 두고 살았다.

그는 나물밥 30년에 구차함을 느끼지 않았고, 곁두리 30년 탁배기에도

아쉬움을 말하지 않았다. 달팽이집이라도 머리만 디밀 수 있으면 뜨락에 풀포기를

길렀고, 저문 황톳길 오십 리에도 달빛에 별발이 어리면

뒷덜미에 내리던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워하였다.

아아,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 시인이여.

당신과 더불어 산천을 떠난 그 눈물들,

오늘은 어느 구름에 서리어 서로 만나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