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뚫려 새벽부터 옥수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예상을 비껴나기 일쑤인 한반도의 기상예보를 그리 신뢰하지는 않지만,  

어제 밤 예쁜 비옷을 입고 텔레비전에 나온 기상캐스터의 말대로

장맛비는 인천에 150밀리 족히 뿌려진 듯 합니다.

인조잔디가 비로 철벅대는 용담구장에서 축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에 치른 수중경기 때문에 바늘이 좌뇌를 콕콕 쑤셔대는 통증감기에

시달린 탓에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가고 말았습니다. 

회원들과 커다란 대봉시나무가 서있는 시골집에서 닭볽음으로 점심을

하진 못했지만, 비가 오면 봉혜가 쪄주는 감자를 먹고

하나님의 빗소리 음악을 듣다가 단잠에서 깨어난 늦은 오후,

비가 그치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런 날엔 하늘을 나는 일보다 온 아파트를 뛰어다니는 것이 즐거운

참새들과, 젖은 머리털을 곧추세운 굴뚝새들과, 비가 멈추고 산안개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락의 야생백합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이 작은 새들의 앙증맞은 뜀박질과 설익은 지저귐, 

안개를 벗삼아 피어나는 백합을 볼 때마다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곤 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숨쉬고 있는 때문이 아닐런지요.

그 작은 새들로, 한 송이 백합으로, 살아서 날게 하고 웃음짓게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생명이, 나의 목숨도 지탱하며 살아가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 생명의 존엄성과 경이로움이 사무치도록 실감됩니다. 

우리의 삶이나 죽음도 모두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들로서 다만 그 드러남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다운 자유를 가지고 대범하게 사는 것,

이것이 예수가 말한 진실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