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폭염으로 뜨락의 꽃잎과 이파리들이 넋을 놓아 벌러당 누워버렸다.

알맞게 익은 앵두는 그늘에 숨어버리고, 노오란 양귀비가 겉옷을 벗고 

까만 문신을 목덜미에 새기고 있을 때, 아스팔트에 뒹구는 버찌열매는

수분이 말라 참새들의 입 맛을 잃게 만들었다.

나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식물들은 빗방울을 그리워했다.

다행이다. 아침에 잠깐 내린 중부지방의 비가 오후에는 넉넉한 빗줄기로 변해 

대지는 다시금 생기를 되찾고, 더위에 놀란 나뭇잎들이 몇 방울의 이슬들을

아직 바닥에 떨구지 않고 있다. 서울의 손님을 배웅한 후. 

한 가톨릭 사제의 참선 체험서를 읽는다.

선승들의 생활양식과 사상이 기독교와 가톨릭 수도자들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그 동안의 의문을 차차 풀게 되어 기쁘다. 

이 책을 쓴 가도와키 가키치의 하나님을 이 곳에 적어 본다.

그의 하나님은 곧 나의 변치 않는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주님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의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 이성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는 분이시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하나님은 이러저러한 분이다, 예컨대 무한하고 온전히 선하신 분이다,

라고 규정할 때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닌 것을 가리키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라고 말하는 경우 곧 이어서 우리는 

그런 개념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분이라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맞은 편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그 분에게 감싸여 그 분이 직접 활동하시는

가운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선적(禪的)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하나되어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기도의 이상이기도 하다.

우리와 관계를 맺은 상대적 존재로 전락된 신은 참된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피조물과의 어떤 상대성도 절대적으로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감싸며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