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봉혜와 아비 성만이 책임질 사랑을 하여 낳은 첫째 아들 활아,

태풍 '메아리'가 스쳐 지나 갔는데도 이틀을 이어 비가 내렸구나.

네가 뛰놀며 자란 인천의 거리들이 흠뻑 젖은 채 밝은 해를 기다리고 있다.

늦은 오후 얼굴을 내민 햇살에 세상은 너의 이름처럼 활기가 도는구나.

네가 훈련 중인 성남은 먼 거리가 아니라서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선생의 노래처럼

한 하늘의 비며, 한 하늘의 태양이 아니겠느냐.

황이 형 활아, 벌써 일 주일이 되어 가는구나.

너에게는 아주 멀고도 긴 시간이었겠지.

지난 여름 검게 타고 흙탕물에 범벅이 된 너의 훈련 사진이 떠오른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조급함이야 없지 않겠으나,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서 밝고 맑은 생각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마.

활아, 돌아보니 수놈이란 군생활을 하며 씨알이 굵어지는 법이다.

부모와 형제, 친구와 마을의 소중함도 몸소 알게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리웁냐, 활아.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하며 너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나의 글과 사진에도 실은 적 있다마는 봉제산에 오르는 너희 뒷모습이,

어느 날 문득 기쁘고도 슬픈 자각처럼 다가왔었다.

그것은 우리의 만남이 값지고 영원하면서도 언젠가는 헤어질 그리운 인생이기에,

너희들 보금자리며 우리의 터전 그리고 함께 했고 함께 할 시간들은

그 얼마나 소중하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참이며 진실이라서 

나는 너희를 더욱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청년 활아! 요즘 너의 동생 황이를 연수도서관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목에,

네가 바삐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게 된다.

그 시절 네 등하교 모습을 떠올리며 이젠 느리게 느리게 자라주어도 좋으련만,

세월은 오히려 짓궂은 바람처럼 우리 곁을 스쳐 지나는구나.

활아, 사랑한다. 무척이도 나는 네가 좋다.

응급수술에 실패하고 말없이 눈을 감으시던 시트 위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도 말없이 아버지를 보내드렸었다. 그 손은 1983년 4월 20일 서울역 입영열차에서 

나의 손을 꼭 잡아주던, 주름진 나의 아버지의 손이기도 했다.

활아, 나는 너희들에게 그 손이고 싶구나.

아주 희미하게 사라지는 의식의 끝자락에서라도 나는 너희들의 손을 구별하고,

너희들은 나의 기나긴 마음의 언어를 읽어내어 기쁘고도 감사하게 작별할 수 있는 

바로 그 손이도록 나는 너희들의 손을 만지고 싶은 것이다. 

가끔은 이성을 그리워하는 속에서도 아버지의 공간을 조금은 남겨두지 않겠니?

활아, 또 쓰마. 건강하게 지내고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 잊지 말거라.

특별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네 몸과 주위에도 시야를 확보하렴.

여무는 수컷 이 활을 있게 한 수컷 아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