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뜻밖의 비가 쏟아졌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손님을 배웅하고 소년처럼 비에 흠뻑 젖어 돌아왔습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시계는 새벽 두시 오십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비 그친 화단에서 잠들지 못한 풀벌레들의 소리 나지막히 들려오고

언젠가 오스트리아 빈 시내, 아름드리 수풀이 우거진 공동묘지에서

조그만 쇼펜하우어의 무덤, 그가 직접 쓴 묘비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이 새벽 그의 유쾌하고도 독한 그의 저서를 집어들고 말았습니다.

요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당마다 정치인들이 패거리로 갈려

오직 이기기 위한 독설을 내뿜는 모습을 보면서

쇼펜하우어가 말한 겸손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괴테가 말했다. "사기꾼들이나 겸손하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은 그토록 열심히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을 요구하고

강요하며 끊임없이 '제발 겸손해라! 제발! 제발 겸손해라!' 라고 외치는 자들은

틀림없이 사기꾼이며 공적이 전혀 없는 잡배이자 자연의 대량 생산품이라는 주장일 것이다.

왜냐하면 공적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적도

인정할 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참된 진짜 공적일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아무 장점도 공적도 없는 자들은 그런 것들이 세상에 아예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이나 공적을 보면

아주 약이 오르고 시기심으로 속이 시커멓게 탄다.

그들은 천부적인 장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말살하며 절멸시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만일 하는 수 없이 그들을 살려두어야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이 자신들의 장점을 감추고 완전히 부인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버리도록 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겸손에 대한 그 귀 따가운 찬사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런 겸손의 찬미자들이 공적을 싹부터 제거하거나

또는 그것이 나타나거나 알려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경우

그렇게 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이론에 대한 실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