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에 봉재산에 올랐다.

아침 날씨는 포근하다. 안개도 드리웠다.

살살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나는 요즘 지난해 여름 출간된 림태주 시인의 「이 미친 그리움」을

뒤늦게 구입해 재미나게 읽고 있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과거부터 미래까지를 한 사람의 일생 안에 담아두는 것.

그러므로 그리워하면 할수록 마음의 우주가 팽창한다는,

자칭 ‘그리움의 천재’ 림태주 시인이 「한국문학」으로 등단하고

20년 만에 낸 첫 산문집이다.

소설가 · 화가 · 음악가 등 예술가는 모두 집을 짓고 살지만

시인만 집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그만큼 그립다는 게 시인의 말.

림태주 시인은 이 그리움을 양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잘은 모르지만 림태주 시인과 그의 엄마가 책에서 나눈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보아, 나처럼 남쪽이 고향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유연하고 익살맞은 산문 한 대목을 이 곳에 옮긴다.

"니네 언제부터 다방 이름을 나팔꽃으로 했노?"

"마담 언니가 카수 임주리 열성 팬 아이가. 립스틱 짙게 바르고. 그

노래 히트 치고부터 동백 다방을 나팔꽃으로 바꿨다 아이가."

"아. 그렇나? 근데 니는 왜 갑자기 갱상도 사투리를 쓰고 지랄이

고?"

"오빠야, 이런 사업에 종사하려면 외국어 몇 가지는 기본으로 해야

한데이. 오빠야가 좋아하는 쓰타까토로 해줄까? 오빠 왔. 오랜만!"

"마니 짧네. 밥은 묵었노?"

"영혼이 고파서 선짓국으로 순대 채우고 왔지."

"말 좀 이쁘게 해라. 순대가 뭐고?"

"아참, 영혼의 원고지를 각혈로 채우고 왔어. 어때, 됐지?"

"가스나, 살아 있네! 근데 니 이름이 뭐고?"

"니미! 진흙 니에 아름다울 미."

"뭐, 니미? 어째 좀 어감이 이상하다."

"연꽃이란 의미야. 진흙에서 피는 아름다움!"

"그래서 우아를 떠셨구나."

"내가 우아 떠는 데 보태준 거 있어?"

"성은 뭐고?"

"꽃!"

"우와, 꽃니미! 참수수하고 좋구나."

"오빠 이름은?"

"이여!

다를 이, 같을 여."

"무슨 뜻?"

"말 그대로지. 다를 때는 색다르게, 같을 때는 한결같이."

"우와, 님 쫌 멋진 듯. 성씨는?"

"임!"

"우와 좋다."

"세 번만 불러봐. 마지막에 아아 넣고."

"임이여, 임이여, 아아 님이여."

"......"

"왜 불러도 대답이 없어?"

"<님의 침묵> 이잖아."

"캬아, 그럴듯!"

"죽이지? 오늘 커피는 니가 쏴."

"헉?"

통성명은 모든 거리를 단축하는 마술을 부린다.

우리가 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이여는 니미를 부르고 니미는 이여를 부른다.

서로에게 가서 그리움이 된다.  

 - 털보시인 화원에서 들여온 동백이 사무실에서 어제 꽃을 피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