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7일. 인간사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누가 시간을 재는 것인가. 캄캄한 어둠이란 있기는 하는 것인가.

엄밀히 말해, 밤은 지구의 그림자.

밤에는 우리의 눈에 하늘의 초인종 같은 별들이 보인다. 

그렇듯 내 마음 어두울 적에 하나님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이 태초이고 오늘이 종말이다. 

여기 나 서있는 곳이 이 세상의 시작이고 땅끝이다.

내가 우주이고, 빛이며, 어둠이기도 하는 것.

그러니 나의 죽음은 곧 지구의 멸망이고 모든 것의 소멸.

그리하여 나의 소망은 나의 소멸과 더불어

진리의 하나님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니,

몸을 벗고서도 나는 그 분과의 대화를 열고 싶은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여태 그랬듯이 내가 아는 언어와 몸짓,

기쁨과 슬픔의 감정 따위들인데, 그 이상의 무엇으로

진리의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것일까? 

진리의 하나님을 뵈올 적에 

나는 과연 그 분을 알아차릴 수나 있을까.

그 분이 반갑게 맞아주실까.

죽어서도 마음을 비워야 비로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 나는 그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나.

토머스 머튼은 1961년 7월 23일자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모임에도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겠다.

이것이 내가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다.

세상에 매우 작은 발자취라도 남기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은밀한 시도를 모두 포기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잊혔다는 깨달음을 온전히 전적으로

얻기 전에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나는 날마다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에 직면한다. 대가를 치르는 것 앞에서

움츠러들면서도 나는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