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지던 그 날 새벽, 빌라도의 법정에서

빌라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와 바라바 가운데서 선택하도록 만든다.

선택받은 한 명은 풀려나는 것이다.

바라바는 누구인가?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바라바는 강도였다.

그러나 강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말은 대략 '저항 투사'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바라바가 이름난 죄수였다는 마태의 말을 고려할 때,

바라바는 뛰어난 저항 투사였으며 아마도 당시 반란의 지도자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바라바는 일종의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예수와 바라바 사이의 선택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두 명의 구세주, 두 종류의 메시아 신앙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 라빠 Bar-Abbas 라는 말이 '아버지의 아들'을 뜻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것은 전형적인 메시아적 호칭으로 메시아운동의 뛰어난 지도자를 기릴 때 쓰는 이름이다

유다인들이 132년에 일으킨 마지막 대반란의 지도자는 바 코크바 Bar-Kochba,

곧 '별의 아들' 이었는데,

이것도 동일한 의도가 표현된 명명인 것이다.

3세기까지 작성된 많은 육필 복음서에서도 구세주를 '예수 바라바'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불렀다.

이처럼 바라바는 예수를 빼닮은 인물이었다.

다만 둘은 똑같은 것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선택의 한 쪽에는 투쟁의 지도자로서 자유와 독립된 나라를 약속하는 구세주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 곧 생명의 길이라고 선언하는 나약한 청년 예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중이 바라바를 택한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일까.

만약 우리가 오늘날 선택을 해야 한다면 과연 나자렛 예수를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알기라도 하는가.

2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혹자는 우리에게 악마를 숭배하라고 이야기할 만큼 단순한 자가 아니다.

유혹자는 우리에게 그저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라고 제안할 뿐이다.

오직 실험가능하고 우리 손에 쥘 수 있는 하나님만을 선택하라고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