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11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저 우주 공간에는 시간이 있는 것일까요.

우리만이 시간이란 것을 정하고 시간 속에 갇혀 사는 건 아닐까요.

빵모자를 눌러쓰고 좋아하는 털장갑을 끼고 봉제산에 올랐습니다.

잔설이 쌓인 봉제산을 걸으며, 내가 사는 동춘동과

사무실이 있는 송도 쪽을 바라다 봅니다.

2011년이 겨울연을 타고 가물가물 창공으로 사라집니다.

소원을 빌며 가난한 소암마을을 지나 커다란 호두나무가 서 있는

산 중턱을 도니, 알록달록 노인부부가 살았던 폐가에 발길이 머뭅니다.

봄 여름 봉제산 자락에 고추 호박과 무, 배추를 한갓지게 잘 기르셨지요.

비탈진 언덕에선 이름모를 야생화가 철따라 피고 지고

검둥이 두 마리가 반기던 그 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네 집으로 들어간 할아버지를 나는

봉제산 산행길에서 뵙곤 했는데, 내려오던 길에 마주쳤습니다.

재개발을 염두에 둔 사람에게 얼마 전 집이 팔렸다 하시네요.

남은 생 건강하고 행복하시라며 인사하고 내려왔습니다.

한 해는 가고 또 새 해는 떠오르지만, 언젠가 우리도 그 텅 빈 집으로 가

우리의 시간들을 잊어야 할 날 있겠지요. 잘 가요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