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 구입한 소설가 최인호의 산문집 「인연」을 이제야 끝냈다.

나의 게으름이 때처럼 묻어나는 내 책상엔 아직 열일 곱권의 책이 쌓여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예전같이 독서의 속도와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돌아보면 사람이란 적당히 신경쓰고 일도 적당히 해야만 

독서의 틈과 독서다운 열정을 유지하는 것 같다.

또 언제 다시 꺼내어 볼지 모르는 최인호의 산문집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

그의 책 제목처럼 「인연」에 대해 함축해 놓은 대목이 있어 이곳에 옮긴다.

최인호 작가가 사랑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산 피난시절의 산동네를 돌아보며 적은 산문이다.

우리가 살았던 풍경들이 다른 풍경들에게 장소를 내주고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우리들도 언젠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상을 물려주고 떠나야 할 것이다.

나뭇가지에 무성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 후 낙엽으로 다 저버리고 나면

한 계절이 가는 것처럼

한 장소에 깃들어 있던 풍경이 다른 풍경으로 사라지고 나면

우리네 인생도 저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계절이 돌아와 나뭇가지에 꽃이 피는 풍경이 돌아오듯

이 생이 다하고 나면

다음 생의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았던 그 모든 풍경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