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살랑살랑 나뭇가지 흔드는 동춘동의 가을빛이 곱습니다.

아침 겸 점심을 하고 내가 사는 아파트 둘레며 근린공원을 한 바퀴 도는 사이,

둘째 아들 황이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인태, 정훈이, 태규 ... 쫄랑쫄랑 초등학교 다니던 모습이 어제 같은데

군데군데 수염이 돋고 듬성듬성 새치도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들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무심히 흘렀습니다.

아침 운동을 나가지 않았더니 하루가 고스란히 눈에 담깁니다.

가을 햇볕도, 가을 바람도, 몽글몽글 피어난 가을국화며 향기롭게 익어가는

탱자열매도, 단풍 든 나뭇가지에서 속닥이는 비둘기 친구들까지.

돌아와 책을 펴니 다석선생의 이 말씀이 뜨락의 벌개미취꽃처럼 눈에 듭니다. 

"인생살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것이 확실한 것인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죽는다고 하는 이것 역시 우리는 모른다.

죽는다고 해서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뛰어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것이 사는 것이 아니다.

또 여기를 떠나서 죽는다는 것도 죽는 것이 아니다.

배를 갈아타는 것뿐이다.

이 사람이 60여 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차고 나와서

지금 지구라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다.

머지않아 이 배를 버리고 다른 배를 타게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늦여름에 봉혜가 큰 맘먹고 바꾸어 준 내 스마트폰에는 

천억 개의 은하 대우주가 유영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언젠가 나도 이 대우주의 배를 버리고 또 다른 배를 갈아타는 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