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또 다시 시월의 끝자락이었다.

내가 군을 전역한 옛 날이기도 하고, 큰아들 이활의 발표를

애타게 기다리던 날이기도 했다. 

아무리 욕심나는 자리일지라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런 다짐으로 살라며 위로했건만 그의 청춘이 얼마나 용납

할런지는 모르겠다. 

근래 이러저러한 일로 바삐 살다 보니 

독서도 못하고, 일기도 쓰지 못하였다.

그래도 가는 시월을 그냥 보낼 수는 없어, 길 위의 신학을 꿈꾸는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의 '햇볕의 기억' 이라는 제하의 글

일부를 적어봄으로 아쉬웠던 시월과 작별하련다.  

아파트 잔디밭 바위 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햇볕을 쬐고 있다.

간밤의 어둔 기억을 털어내며, 아침 이슬을 말리고 있다.

평온하다. 조는 듯, 명상하는 듯,

그 잠자리 한 마리의 포즈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생각 없이 가벼운 날개 위에 햇볕을 받는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가.

바위는 아침 햇살 아래 충분히 달구어져 있다.

그의 가느다란 다리도 발바닥에 달라붙은 섬세한 솜털도

그 따스한 온기에 깊이 머무는 듯,

미동이 없다.

모시망사보다 더 얇고 섬세한 날개는 양옆으로 퍼져

이슬에 젖은 축축한 내면을 휘발시키고 있다.

고요하다.

이 다사로운 아침 풍경은 왜 그리도 경건하게

내 시선을 떨리게 하는가.

이 시월 한복판의 아침햇살은 왜 그리도

서럽고 고맙고 정겨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