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이불을 텁니다.

젊은 시절 군부대 막사에서 기상을 하고 아침을 먹기 전 힘차게 모포를 털 듯, 

양쪽에서 둘이 털어 딱! 따악 딱!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매일 아침 

이불을 터는 남자입니다.

이불을 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 봉혜 때문입니다.

봉혜는 시집 오기 전부터 이불을 털었다고 합니다.

자고나면 이불에 묻은 먼지며 진드기가 봉혜의 커다란 눈망울에

잡혔기 때문일까요. 시집 가면 꼭 그 일을 신랑에게 위탁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지난 여름 인천을 강타한 태풍 '곤파스' 에도 잠시 소강상태를 틈타

나는 이불을 털었습니다.  

이불을 터는 시점은 공휴일을 제외하면 아침을 먹고

황이가 교복을 입는 시간 사이입니다. 

대장 봉혜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둥지가 대로변 1층 아파트라,

아침이면 출근하는 사람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의 눈에

저의 모습이 노출되지 않을리가 없겠지요.

처음엔 지나가는 어른들께서 이불 터는 위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셨지요. 

아줌마들로부터는 봉혜와의 금슬 때문이라며 시새움의 대상이기도 했어요.

눈 비비며 학교 가는 어린이들에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욕도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풍경이었습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아침을 반바지에 런닝구차림으로

이불을 들고 나옵니다.

이젠 이불을 털어온 지 어언 20년이 지났습니다. 

오는 3일이면 벌써 봉혜와 둥지를 튼 지 벌써 22년이 됩니다.

90%의 아침을 비가오나 눈이오나 이불을 털었으니,

많은 이불이 제 손을 거쳐 재활용의 선고를 받고 유배형에 처해졌습니다.

아들 둘이 버젓이 늦잠을 즐기고 있는데도 이불을 털게 하는 봉혜가

때로는 밉기도 하지만, 이불털기는 나의 일상이 되었고 

동춘동 한양아파트의 아침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바쁜 일로 이불을 털지 못할 때는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관심도 갖나 봅니다.

봉혜와의 사이가 나빠졌나 소문도 낼 것 같아 어쩌지 못하고,

아침이면 나는 가능한 활짝 웃는 얼굴로 힘차게 힘차게 이불을 텁니다.

간혹 지나가는 차 소리에 이불 터는 소리가 모닥불 타들어가듯 

차락 차락 제법 울릴 때도 있습니다. 

나처럼 이불 터는 남자들이 지구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불 터는 아버지 모임을 결성해 볼까도 검토중입니다.

여러분, 이불을 털면 여러모로 좋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새벽 4시 53분,

오늘 아침 7시면 저는 분명 이불을 털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