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부터  비가  그쳤다.

오늘  아침은  청명하고  쌀쌀하다.

며칠  사이의  비로  벗꽃이  떨어지고  떨어진  자리에 

연녹색  이파리가  돋았다.

흠뻑  수분을  흡수한  라일락꽃  향내가  궁금한

지렁이들이  아침  산책길에  나와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다

눈이  멀어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괴로워하고  있는  녀석들

다섯  마리나  구제를  해주었다.  화단으로  보내기  위해  꼬챙이로  몸을  대면

힘이  느껴질  정도로  저항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죽은  시늉을  하는  녀석도  있다.

지렁이는  소중한  생물.  나무가  뿌리를  내리도록  길을  열어주고

버려진  음식물을  청소해주는  고마운  자연이다.

그들의  배설물은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처럼  비가  그친  아침에는  지렁이  친구들이  땅  위로

위험한  마실을  나온다.  공원의  비둘기와  참새  공양물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지렁이를  볼  때마다  고맙고  안쓰럽다.

지렁이  모습에서  지나간  나를  보기  때문인가.

눈  먼  자  되어  어디로  가야할  지,  때를  분간  못한  채  땅바닥에

널브러지거나  그래도 살아보자며  몸부림치다  결국은  누군가의

먹잇감이나  되고야  말았던.

그리고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를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지렁이와  진배없다.  

나는  지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