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23년  봄,  아파트  화단  산수유나무는  노란  꽃봉지  터트렸고

얼어  죽은  줄  알았던  튤립과  매발톱꽃이  도탑게  싹을  내밀었다.

이맘때면  늘  자연의  숭고함과  희망을  느낀다.

오늘은  시작의  역설을  상고해본다.

모든  이야기의  한가운데는  시작의  역설이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세계에  대해  지식이  없었던  때를  설명하려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기원(起源)  이야기들은  무(無)에서  어떻게  무언가가  출현했는지를  설명한다.

많은  이야기는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창조주는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어떻게  무(無)에서  무언가가  나왔을까?’ 이다.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기원인  빅뱅우주론(big bang cosmology)에도

이  문제가  제기된다.  처음  접하면  황당할  수도  있는  이  이론에는  시적이면서

비유적인  특성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것을  기술하려면  현대  과학도

시적인  언어를  써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대  우주론(cosmology)도  시작의  역설을  풀지  못하고  있다.

우주론자들은  빅뱅(bigbang)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추정하려고  애쓰지만,

현재로서는  왜  우주가  무(無)에서  출현했는지를  알  수  없다.

심지어  빅뱅  이전에  무(無)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최근까지  과학자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인  추정에  의하면,

예전에  있던  우주가  쪼그라들어서  무(無)가  되었다가  다시  폭발하여

새로운  우주를  형성했다는  추정이다.

요즘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다른  추정에  따르면,

방대한  다차원  ‘다중우주(multi verse)’ 가  있고,  독특한  특징을  지닌  우주들이

그  안에서  계속  출현하고  있다는  추정이다.

그런  추정에  따라  우리  우주는  무수히  많은  우주  중  하나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계속  나올  수  있으므로

앞으로  우주론의  세세한  부분들이  바뀔  것이라는  점도  안다.

현대의  기원  이야기는  고정되거나  절대적이지  않으며  또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는  태초의  시작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